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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gory Park (박기형) 은 한국전쟁(1950~1953) 이후 새 나라 건설에 대한 희망이 충만하던 1956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항상 그룹의 중심이되어 어린 시절부터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정치인이 되고 싶었지만 1970년대 한국의 군사독재 아래 정치 상황이 끔찍하자 가족들이 이를 가로막았습니다. 대신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추천되어 공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ROTC군사훈련을 받고 2년 반의 군복무를 위해 육군 장교가 되었습니다. 군복무를 마친 후 엔지니어가 되어 Fairchild Semiconductor, BOSCH와 같은 많은 기술 선도 기업에서 근무했습니다.
1989~1990년에는 서독 슈투트가르트 인근 BOSCH 자동차 부품 연구소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는 첨단 자동차 부품 기술뿐만 아니라 독일인의 근무 스타일, 즉 꾸준하고 완벽하게 일을 끝맺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이 태도는 평생 동안 그에게 유지되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는 다리 붕괴 등의 사고가 많았습니다. 1993년에 그는 한국 사람들에게 독일식으로 일하는 태도를 권면하기 위해 '아우토반'이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독일에서 겪었던 많은 에피소드를 소개했습니다.
1999년에 그는 한국에서 훌륭한 컨설턴트가 되었습니다. 그는 발상의 전환으로 Y2K(밀레니엄 소프트웨어 버그) 문제를 해결하여 한국 정부의 $100,000,000 예산을 절약했습니다.
2000년에 그와 그의 가족은 캐나다로 이주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자녀들을 좋은 교육 시스템에 배치하고 또한 그도 캐나다 정치 시스템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Queen's University에서 과학연구 팀의 일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독일 기술로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2004년에 그와 그의 가족은 Oakville로 이사했고 2005년에 캐나다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는 계속 엔지니어링일을 하면서 한편으론 회계, 재무 및 비즈니스 법률과 같은 다른 분야의 지식을 넓혔습니다.
그는 기사도 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한국 선교사 21명이 납치되는 사건이 터지고 2명이 피살되자, 그는 토론토와 워싱턴 D.C.에서 구명운동을 시작했고, 미국으로 가서 백악관 정문에서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백악관안의 한 경찰관이 그를 보고 그의 메시지를 대통령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미국은 '테러리스트와의 협상 불가' 정책을 완화하고 전면 공격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이후 탈레반과 한국 정부는 협상을 벌린 결과 나머지 인질 19명이 모두 석방되었습니다. 그는 그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그들의 생명을 구하는 행동은 영웅의 자질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의 도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BOSCH의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고 일하는 분야는 그의 경력과 거리가 먼 마케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극복하고 계약 기간에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그는 중국 사회와 경제에 대해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습니다. 그는 이 지식이 미래의 정치경력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중국에 머무는 동안 그는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에서의 유엔의 두만강유역 경제개발계획(UNDP) 활동을 개인적으로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2011년 캐나다로 돌아왔습니다.
2011년에는 리비아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무고한 리비아인들이 리비아 공군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그는 다시 기사도적 행동을 했습니다. 그는 상황을 은밀하게 유도하기 위해 적시에 유엔과 백악관에 권고안을 보내 '비행금지구역'을 유도했습니다.
2013년, 그는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도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술력으로 Oakville에서 스마트폰 수리를 시작하여 8년 동안 성공적으로 사업을 운영했습니다.
2021년에 그는 Bronte Creek의 콘도 커뮤니티의 이사로 선출되었습니다.
2022년에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공공 리더십 단기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2022년에 66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16세 때의 위대한 정치인을 향한 열정의 불꽃은 아직도 그의 가슴에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가 정치 경력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일까요?
Gregory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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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site: www.gregorypark.ca